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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카메라와 발달과정, 그리고 현재의 카메라

by windcore 2024. 2. 3.

현대는 영상의 시대라고 주저 없이 말할 만큼 카메라와 영상은 우리의 삶을 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바꾸어놓았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도 나의 영상을 보내주는 불과 20년 전만하더라도 생각하기힘들었던 첨단의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을 바꾼 시초가된 발명품인 카메라는 어떻게해서 만들어지게되었을까요

최초의 카메라

최초의 카메라는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두운 방에 조그만 구멍을 통해서 들어온 빛이 맞은편 벽 면에 밖의 풍경을 그려내는 현상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주 오래 전 고대부터 인류는 이러한 신비로운 자연현상을 알고 있었다고 하며 이러한 현상은 빛과 자연의 현상에 대해서 연구하는 과학자와 철학자들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관심의 주제였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원리를 천문과 관측에 이용했었다고 하는데 BC4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암상자를 만들어 작은 구멍을 뚷고 반대편에 비치는 빛을 이용해 일식을 관찰했었다고 하며 11세기 아라비아의 학자였던 알하이탐도 이러한 현상을 이용해  일식의 초승달을 관찰하는 도구로 사용하며 기록을 남겼는데  "어두운 방의 구멍의 지름이 아주 작을 때만 일식 때 초승달의 모양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최초의 카메라 옵스큐라

카메라옵스큐라의 어원은 라틴어의 '어두운 방'을 뜻하는데 카메라는 '방'을 의미하며 옵스큐라는 '어두운'을 뜻한다고 합니다 15세기 경 레오나르 다빈치(1452~1519)도 정확한 원근법을 사용하기 위하여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다신 정약용(1501)이 이러한 원리를 알고 사용하였는데 정약용은 수학, 천문학, 경제학 등 다양한 방면의 학식에 뛰어났으며 학문을 기술에 접목하는 실용학자이었다고 합니다  정약용은 이 도구를 '칠 실 관화설'이라고 불렀으며  이 도구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정약용은 이 칠 실 관화설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맑고 좋은 날을 택하여 방의 창문을 모두 닫고 밖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모두 막아 실내를 칠흑과 같이 하되 오직 한 구멍만 남겨 애체 하나를 여기에 끼운다  그리고 눈처럼 흰 종이판을 가져다가 애체와 몇 자 거리에 놓으면 종이판에 모래톱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움이 종이판 위에 떨어진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렇듯 작은 구멍을 통해서 상이 모아지고 반대편 벽면에 투사되는 현상은 이미 오랜 시간 전부터 관찰되던 현상이었던것 같습니다


카메라옵스큐라가  작은 구멍을 통해서 외부 세계를 어떤 한 면에 투사시킬 때는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은 실외의 풍경을 거꾸로 표현해 놓았습니다(이러한 현상은 빛이 직직하다가 작은 구멍에서 교차되며 상하좌우가 반전되는 현상입니다)
또한 구멍이 크면 빛이 많이 들어와 이미지는 밝지만 투사되는 상이 흐릿해지고 구멍이 작아질수록 또렷한 상을 맺는 현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의 3가지 현상은 카메라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인데 현재 카메라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모두 이러한 특성을 기본원리로 카메라는 발달하였습니다

카메라의 발달과정

초기의 카메라는 렌즈가 없는 상태로 사용했는데 1568년 다니엘 바르바로 가 카메라 옵스큐라의 구멍에  렌즈를 최초로 부착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또한 바르바로는 카메라옵스큐라의 구멍의 크기가 벽에 그려지는 이미지의 선명도와 비례한다는 것을 알고 이 구멍의 크기를  조절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의 카메라의 조리개의 원리의 피사계 심도)


이  렌즈를 처음에는 볼록렌즈만으로 사용하였는데  볼록렌즈만을  사용하니 카메라옵스큐라의  면에 맺어지는 상은 분명하여졌지만  가장자리가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왜곡현상을 17세기 이탈리아의 수학자 '제롤라모 카르다노'가 개선하였는데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겹쳐 사용하므로 써  가장자리의 왜곡현상을 개선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요한 크리스토프 슈트럼(1635~1703)은 카메라 옵스큐라 내부에 45도 각도의 거울을 달아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는데 지금의 반사식 카메라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메라옵스큐는 점점 발전이 되어 작은 구멍을 조절하여 이미지를 선명하게 하였으며 반사경을 부착하여 거꾸로 된 상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포착된 이미지를 영구히 보존시키는 방법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옵스큐라는 주로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포착된 그 이미지 자체를 영구히 보존하고자 하는 방법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영상을 고착시키고자 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연구되는 가운데 1614년 안젤로 살라는 질산은이 햇빛을 받으면 검은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1725년 독일의 해부학 교수인 슐체도 또한 질산은의 혼합물이 담겨있는 병에 글자를 배열한 스텐실을 붙여 햇빛에 노출시킨 결과 노출된 부분은 검게 변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슐체는 검게 변화되는 것은 질산칼륨이 아니라 용해된 은입자라는 것도 증명하여  은입자가 빛과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빛과 반응하는 화학물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놀라운 영상의 세계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1770년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1799년 영국의 토마스 웨지우드도 질산은에 담근 종이나 가죽을 카메라 옵스큐라에 넣어 영상을 고정시키는데에는 성공하였으나 그 영상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않아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1826년 프랑스의 사진 제판 발명가 조셉 니세포르 니에프스는 카메라 옵스큐라로 그의 자택 르 그라의 2층 창문에서 8시간의 장노출을 주어  세계최초의 사진이라 불리는 이미지를 포착하여 고정시키고 영구히 보존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니에프스의 '르 그라의 창가에서 본 조망'


니에프스는 이 사진의 제목을 '르 그라의 창가에서 본 조망'이라 붙이고 태양광선으로 그린 그림 이란는 뜻으로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라고 불렀다고합니다  니에프스는 이 실험을 성공하기 전,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의 관심은 한 번 찍은 사진이 햇빛을 받아도  새까맣게 타지 않는  화학물질을  만드는 것인데, 나는 오늘 그  방법을 알아냈어.   아스팔트는 햇빛을 받으면 굳어지는 성질이 있는데  유대 역청(아스팔트)을  발라 감광판을 만들고 카메라옵스큐라에 넣어 노광을 주면 아스팔트가 굳어지는데 그다음 라벤더유로 씻어내면 햇빛을 받은 부분은 굳어지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씻어내려.. 햇빛을 받은 부분이 이미지를 형성하는 거지"라고 서신에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출시간이 너무 길어 실용화되기는 어려웠습니다
 니에프스는  짧은 시간의 노출과  사진의 실용화를 위해서 연구하던 중 파리의 화가이자 사진술 연구가이던 다게르에게 공동연구의 제의를 받고 같이 연구하던 중 1833년  살롱 쉬르 손에서 뇌출혈로 사망하고맙니다


이후 다게르는 혼자서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다가 어느 날  우연히 수은증기의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풍경을 찍었던  동판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몇 주 후  서랍 속의 동판을 보니  찍었던 풍경의 상이 선명하게  나타나있었습니다 다게르는 서랍 속의 병들을 하나씩 치우며 실험한 결과  수은병을 치웠을 때는  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고   1837년  수은증기가  상을  나타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게르는 2년 뒤 소금용액을 사용하면  분해되지 않은 요오드화 은은 제거해  상을 정착시킬수있다는것도 알게되었습니다 1839년 8월19일  다게르는 드디어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였고 프랑스 정부는 8월 19일을 사진의 날이라고 정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뉴턴의 만유인력만큼이나 놀랍고 흥미진진한 연구발표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게르의 실험방법은 다음과같은데  동판에 요오드 증기를  쐬어줍니다 그러면 동판의 표면에  요오드화 은의 얇은 막이 생깁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감광판을  카메라옵스큐라에  넣습니다  


이 감광판을 카메라 옵스큐라에 넣고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감광판이 햇빛에 노광 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감광판에 사진이 찍힙니다 옥화은이 은으로 변화시키면서 잠상이 형성되는데, 이 잠재된 영상이 눈에 보이려면 형 수은증기를 쐬어주어야 합니다 감광판을 가열한 수은이 들어있는 상자 위에 놓고 수은증기를 쐬어주면 영상이 드러납니다  진한 소금물에 판을 담그면  빛에 노광 되지 않은 감광물질이  제거되고 마지막 단계로 물에 씻어 건조하는 것입니다 

 

 다게르 타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 후로 이러한 종류의 연구들이 줄을 이었으며 세계 여러나라로 뻗어나갔다고합니다

 

한편 영국에서도 사진의 상을 영구히 고정시키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1834년  탈보트는  카메라로 장시간의 노출로 촬영한 다음 이것을 식염수로 정착해 영상을 얻는데 성공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다게르가 먼저 발표하는것을 보고   탈보트는 자신의 연구가 무효화가 될까봐 무척 고심했다고합니다  그러나 발표는 늦었지만 탈보트는 사진의 실용화를 위해서  계속 연구한 결과  동판이 아닌 종이를 이용해  인화하는 칼로타입을 발명했고 또한 다게르타입과는 정반대인 음화상태로 감광판에서 영상을 포착해 여기에서 양화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종이는 동판보다 가격이 현저히 저렴했고 하나의 네가티브(음화)에서 수많은 포지티브(양화)를 만들어내는 실용성때문에  당시에는 큰 관심을 받지못했지만 오늘날 현대필름 카메라의 원형이 될만큼 실용성과 효율성면에서 궁극적인 인정을 받게되었습니다

 

 1851년에는 다게르타입의 선명성과 칼로타입의 복제성이 합쳐진 콜로디온 습판법이 개발되었는데 유리판 위에 네거티브 필름을 만들어 복사해 내는 방법으로 노광시간도 아주 많이 단축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감광판이 마르기 전에 노출과 현상까지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과정 때문에 암실을 항상 들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로저 펜튼(Roger Fenton)은 크림 전쟁(1853-1856년)의 실상을 암실 마차를 끌고 다니며 기록했다고 합니다 1880년 대까지 콜로디온 습판법은 암실을 들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현대의 우리가 사용했던  투명하고 얇은 플라스틱의 롤필름이 나오기 전까지 아주 널리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현대의 우리가 사용했던  플라스틱 롤필름이 개발된 계기는 코닥의 창업자인 미국의 조지 이스트먼으로부터 시작됐는데 1881년 회계사무소 직원이었던 이스트먼은 친구와 휴가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휴가지에서의 기록을 남기기위해서 사진촬영할 준비를 하였는데  무거운 암상자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게되었습니다  휴가는 가지 않았지만 그 이 후로 사진연구에 깊이 빠져들었고 결국 마른 상태에서도 촬영할 수 있는 건판제조법을 발명하여 상업화시켰으며 또한 1888년에는 가볍고 다루기 쉬운 소형 카메라까지 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카메라가 대중화되지 않아서 판매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코닥은 카메라를 싸게 팔아서 카메라를 대중화시키고 대신 필름, 인화지, 현상약등으로 사업을 안정화시켰습니다   

1891년에는 투명한 셀룰로이드로 된 롤필름이 개발되었는데  카메라에 한 번 장착하면 여러 장을 촬영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사진의 대중화는 폭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코닥은 필름의 대명사가 될만큼  세계적인 대기업이되었습니다  이 후 카메라의 시장은 더욱 커져나갔고 1950대에는 독일의 라이카,일본의 캐논,니콘,팬탁스등의 기업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1946년에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카메라 시장의 보이지않는 변화를 예고하였습니다

 1975년 코닥의 스티브 새슨(Steve Sasson)은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코닥은 주력사업이었던 필름사업의 축소를 염려하여서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을 별로 반기지 않았다고합니다  1979년 래리 맷슨(Larry Matteson)은 보고서를 통해 2010년대까지 사진기가 디지털로 완전히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했지만 코닥은 계속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을 가로막고있었습니다 

 

그렇게 디지털의 출현을 막고있는 사이 1981년 일본의 소니는 작은 사이즈의 전자카메라 마비카를 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가격이 우리나라 돈으로 500만 원정도의 고가이었기 때문에 대중화되지는 못하였지만 디지털카메라의 시장성을 파악한 일본의 카메라 기업들은 1998년 보급형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하였고 대중은 소모성의 필름에서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의 실용성을 택하여  필름 카메라 시장은 급속도로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물결을 거부하였던 코닥은 131년의 역사을 뒤로하고  2012년 1월 19일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필름특유의 질감과 예술성때문에 찿는 사람들이 있어서  필름카메라 시장이 완전히 사장되지는않고 예술적 의미에서의 상품으로 계속 판매되고있다고합니다

 

19세기말부터 화학과 광학으로 이루어왔던  필름 카메라의 역사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미지를 기록하는  IT첨단기술의 세계로 접어들었고 100여년 동안 조금씩 발전해 왔던 필름카메라의 역사를 순식간에 바꾸어놓았으며 카메라는 대중에게 더욱 편리한 도구가 되었고  니콘, 캐논, 소니, 라이카 등 카메라 회사들은 갈수록 발전된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하였습니다

현대의 카메라

그러나 디지털카메라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변화를 겪게 되는데  2002년 스마트폰에 카메라를  장착한 제품이 나오게 되고  2010년 이 후로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의 기능은 화소수뿐만 아니라 렌즈품질, 센서의 크기까지도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고 있어  디지털 카메라의 시장도 점점 축소되고 스마트폰카메라 로 바뀌어가고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지금도 계속해서 빠르게 진화하고있습니다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 몇 시간씩 노광을 주고 기다리던 최초의 사진을 찍었던  니세포르 니에프스는 과연 이러한 시대를 상상이나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