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는 사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의 역사를 빛냈던 여러 사진가들이 사용하였던 애장품이었고 '결정적이 순간'(앙리 까르띠에 브래송, 로버트 카파)을 사진에 남길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주었습니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실용성과 함께 미학적인 면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라이카의 시작과 발전과정 그리고 현재 사진시장에서의 위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라이카의 시발점
라이카의 시발점은1849년 독일의 수학자 칼 케르너가 광학연구소와 현미경 제조사 (옵티셰스 인스티튜트) 를 설립하면서부터입니다 이 당시 사진계의 상황은 이미지를 영구히 정착시키는 과정을 상용화시킨 다게르의 은판사진이 발표된 지 10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카메라의 광학과 현상술의 그야말로 초기단계였습니다
칼 케르너는 당시23세의 젊은 청년이었지만 정밀기계공학과 광학에 관심이 많은 재능 있는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연구한 지식을 활용하여 현미경도 만들었으며 그가 최초로 만든 현미경과 광학논문은 많은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들에게 극찬을 받았으며 그의 회사 (옵티셰스 인스티튜트)에서 생산하는 현미경들은 품질과 정밀도에서 최고의 품질이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주문량에 비해 현미경을 만들어내는 속도와 인력은 따르지 못해서 회사의 운영은 잘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회사를 설립 후 6년 후 칼 케르너가 결핵으로 사망하면서 그의 아내가 회사를 운영하는 등 여러 가지 과정으로 회사가 가까스로 운영되어가고 있었는데 융커스라는 스위스의 대량생산 공장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직원이 스위스 공장의 효율적인 대량생산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그러한 방법을 개발한 사람을 이야기하게됩니다 1865년 옵티셰스 인스티튜트는 그 사람을 스카우트하게 되고 그 사람은 라이트사의 실질적인 창시자 에른스트 라이츠입니다 에른스트 라이츠는 1843년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교사였다고 합니다 그는 어린 어린 시절부터 기계공으로서 훈련을 받았으며 스위스의 한 시계공장에서 기술을 습득하며 대량생산 시스템을 접하며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해내기도했다고합니다 칼융커는 이때 같이 일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에른스트 라이츠는 1869년 옵티셰스 인스티튜트사의 운영주가 사망하게 되자 에른스트 라이츠는 회사를 인수하게 되고 회사명을 '옵티셰스 인티튜트 폰 에른스트 라이츠'라고 바꾸게 됩니다
회사는 인수했지만 많은 빚까지 떠 안아 야했기 때문에 초기의 경영은 힘들었지만 에른스트 라이츠는 고품질의 현미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현미경으로 사업을 점점 더 안정시켜 나갔으며 망원경, 영사기등도 생산하며 광학회사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습니다
라이츠가 카메라를 제작하게 된 계기
초기의 라이츠사 카메라를 제작하였던것이 아니라 주로 현미경, 망원경, 영사기들을 생산하는 회사였으며 라이카의 카메라의 탄생은 당시 영화용 필름카메라의 기술개발자로 있었던 기계공학자 오스카 바르낙과 렌즈를 수학적으로 설계한 막스 베렉의 협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905년 당시 라이츠 사는 영화용 제작 카메라를 외부로부터 주문 받아 제작했다고 합니다 기계공학자이던 오스카 바르낙은 1911년부터 영화용 필름카메라의 기술개발자로 있었는데 오스카 바르낙은 크기와 부피가 큰 영화용 카메라의 적정노출과 초점이 맞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이 번거로워서 테스트용 소형카메라는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풍경사진 찍는 것이 취미였는데 쉬는 시간을 활용하여 야외로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마다 당시의 크고 무거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힘들어서 휴대하기에 좋은 소형카메라를 발명한 것이 라이카사가 소형 카메라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되었습니다 이 소형 카메라의 개발로 수많은 사진가들은 무거운 카메라에서 벗어나 휴대하기 좋은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찰나의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사진사에 남을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라이카의 최초의 카메라
라이츠 사는 이 카메라의 시장성을 보고 시판하려 하였으나 당시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이었으므로 시판을 미루다가 전쟁이 끝난 후 1925년 라이카 카메라의 최초모델 '라이카 1'을 출시합니다 그리고 곧 이후 1932년 렌즈교환이 가능한 라이카의 최초의 거리연동식 RF카메라 '라이카 2'가 출시되며 1954년에는 '라이카 M3'가 출시되는데 이 제품의 완성도는 대단해서 RF카메라를 만드는 다른 카메라 회사들이 RF개발을 포기하게 만든 제품입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큰 성공 뒤에 큰 쓴맛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라이카의 독주로 RF카메라에서 손을 뗀 일본의 카메라 회사들이 SLR방식 카메라 개발에 매달리게 되고 결국 일본은 SLR카메라로 카메라 시장의 판도를 RF에서 SLR로 바꾸어놓고 맙니다
카메라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긴 라이카는 전자식 장치가 부착된 M5와 SLR카메라 시장을 노리고 개발한 라이카플랙스 등을 출시하였지만 모두 다 실패하였고 실패를 만회하고자 저가형의 카메라를 출시하였으나 이마저도 실패하여 결국 1974년 스위스의 빌트헤렌브루 회사가 흡수병합합니다 이어 1986년 '라이츠'사는 회사명을 '라이카'로 바꾸며 RF방식 카메라를 단종시키고자 계획합니다
명품 라이카의 정체성
그러나 라이카 캐나다 공장의 책임자였던 Walter Kluck는 혁신적인 기술을 따라가기보다는 라이카 특유의 탄탄한 내구성과 완성도 높은 디자인과 정밀한 생산과정을 주장하며 M5를 포기하고 M4의 장점을 살린 카메라를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1977년 M4를 모태로 한 '라이카 M4-2와 M4-P를 출시하게 되며 라이카는 신뢰를 되찾음과 함께 라이카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됩니다 이후 라이카는 커다란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이러한 방향으로 카메라로써의 이미지를 지켜가고있습니다
라이카의 명품 이미지는 탄탄한 내구성과 함께 완성도 높은 카메라 디자인, 그리고 사진의 역사에 남을 만한 작품들을 남긴 사진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사진기로서의 의미외에도 생산과정이 대량생산이 아니라 수공으로 만들어지기때문에 소량만 생산하며 또한 구입하면 끝까지 AS로 책임을 지는데 부품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AS를 책임진다고합니다
라이카의 이런 특성과 가치관때문에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카메라 시장 속에서도 명품 카메라로서의 위치를 지키고있는 이유인것같습니다